[전시_2025] Adrián Villar Rojas’s “The Language of The Enemy”


아트선재센터를 집어삼킨 덩굴과 강철, 모래

2층 전시장에 들어서는 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천장을 뒤덮은 검은 전선들과 말라비틀어진 덩굴, 그리고 그 사이에 위태롭게 매달린 거대한 괴물체. 마치 공상과학 영화 속 우주선이 정글에 불시착 해 수백 년 방치된 것 같은 이 풍경.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만난 아드리안 빌라 로하스(Adrián Villar Rojas)의 전시는 단순한 ‘감상’을 넘어선 ‘체험’이다.

이번 전시는 선재아트센터 全층을 로하스의 설치 작품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꾸며졌고 이 작품들은 전시기간이 끝나면 해체되어 다시 다음 나라로 이동, 그 미술관의 형태에 맞게 재해석되어 재설치된다.

2025.12.25 in Seoul

1. 외계에서 온 유물인가?

이 작품은 하나의 독립된 조각이라기보다, 미술관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변모시킨 거대한 설치 작업의 일부다.

  • 작품 제목: 이 설치 작업은 이번 전시 **《적군의 언어 (From the Language of the Enemy)》**를 위해 특별히 제작된 장소 특정적 설치(Site-specific installation)이다. 작가는 보통 연작의 개념을 사용하므로, 이 거대한 둥지와 같은 구조물은 그의 대표 시리즈인 ‘상상력의 끝(The End of Imagination)’의 연장선上에 있다.
  • 제작 시기: 2024년
  • 제작 장소: 대한민국 서울, 아트선재센터 (전시 현장에서 직접 설치 및 제작)
  • 기법 및 재료: 복합 매체(Mixed Media). 흙(점토), 콘크리트, 금속 파이프, 전선, 유기물(식물, 채소, 음식물 등), 그리고 ‘시간’. 그는 재료가 썩거나 변해가는 과정을 작품의 일부로 삼는다. 사진 속 복잡하게 얽힌 선들은 데이터 케이블과 자연의 덩굴을 혼재시킨 것이다.
  • 소장처: 작가와 갤러리 소유이나, 그의 작품 특성상 전시가 끝나면 폐기되거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아 영구 소장이 불가능한 ‘순간의 예술’이기도 하다.

2. 화가(작가) 정보: 유목하는 연금술사

  • 출생 연도: 1980년
  • 출생 장소: 아르헨티나 로사리오(Rosario)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는 ‘스튜디오가 없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는 전 세계를 유랑하며 전시가 열리는 그 장소의 흙과 재료, 문화를 흡수해 현장에서 작품을 짓고 부순다. 2014년에는 ‘Real DMZ Project 2014’로 강원도 평창에서 설치 미술을 진행한 이력도 있다.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불안정과 남미의 토속적 문화가 그의 작품 기저에 깔려 있는 듯 느껴지며 이와 함께 깊은 우울과 생명력을 동시에 불어넣었다.


3. 작품의 예술사(史)적 의미

이 작품은 ‘인류세(Anthropocene)’ 예술의 정점이다. 인류세란 인간의 활동이 지구 환경에 지질학적 영향을 미치는 시대를 뜻한다.

기존 미술사가 ‘영원히 보존되는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로하스는 **’소멸과 부패’**를 예술로 끌어들였다. 흙으로 빚은 조각이 갈라지고, 음식물이 썩어 곰팡이가 피는 과정을 그대로 노출한다. 이는 “인간 문명도 언젠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현대적 해석이다. 사진 속 기계 장치와 뒤엉킨 자연물은 기술과 자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가 무너진 포스트 휴먼(Post-Human) 시대를 상징한다.

2025.12.25 in Seoul

4. 시대의 분위기: 2024년, 불안의 정점에서

이 작품이 탄생한 2024년은 전 지구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다. 작품이 제작될 당시의 시대상은 작품의 ‘디스토피아적’ 분위기와 맞닿아 있다.

  • 끝나지 않는 전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지구촌 곳곳이 파괴되고 있다. 작품 속 부서진 파편들은 마치 폭격 맞은 도시의 잔해를 연상시킨다.

2025.12.25 in Seoul

  • 기후 재앙: ‘지구 열대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기후 위기가 현실화되었다. 작품 속 말라가는 덩굴과 갈라지는 질감은 메마른 지구를 은유한다.
  • AI와 기술의 역습: 생성형 AI의 비약적 발전으로 인간의 고유성이 위협받는 시기다. 작가는 작품에 복잡한 전선(디지털 신경망)을 배치하여 기술에 잠식된 자연을 보여준다.

5. 작품의 감상 포인트: 디테일에 숨은 악마

  1. 전선 vs 덩굴: 무엇이 기계이고 무엇이 식물인가? 천장에서 내려온 검은 선들이 전선인지 식물의 줄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 모호함이 작가가 의도한 ‘하이브리드’ 세상이다.
  2. 둥지(Nest)의 형상: 중앙의 거대한 덩어리는 마치 새의 둥지 같다. 작가는 아르헨티나의 국조인 ‘호르네로(Hornero)’의 둥지에서 영감을 자주 받는다. 하지만 이 둥지는 생명을 품기에는 너무나 차갑고 기계적이다.
  3. 질감의 충돌: 매끄러운 금속과 거친 흙, 부드러운 유기물이 뒤섞여 있다. 이 이질적인 재료들이 충돌하며 빚어내는 긴장감을 느껴야 한다.

6. 작품과 엮인 스토리: 미술관의 기생충?

아드리안 빌라 로하스는 미술관 입장에서 보면 꽤나 골치 아픈 작가다. 그는 전시장 바닥을 깨부수거나, 벽에 곰팡이를 피우거나, 악취가 나는 생선이나 채소를 방치하기도 한다.

이번 아트선재센터 전시에서도 그는 미술관 공간을 점거하는 ‘기생충’ 혹은 ‘바이러스’처럼 접근했다. 깨끗한 화이트 큐브를 덩굴과 흙먼지로 뒤덮어버린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 모든 과정을 **’시간 엔진(Time Engine)’**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작품은 멈춰있는 조각이 아니라, 전시 기간 내내 썩어가고 변해가는 ‘시간을 동력으로 하는 기계’라는 뜻이다.


7. 같이 보면 좋은 작품 & 화가 추천

이 작품의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숭고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면, 다음 작가들도 흥미로울 것이다.

  • 이불 (Lee Bul):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그녀의 ‘사이보그’ 시리즈나 부패하는 생선을 이용했던 초기작들은 빌라 로하스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폐허와 역사의 잔해를 거대한 캔버스에 담아내는 독일의 거장. 압도적인 스케일과 재료의 물성이 비슷하다.
  • 피에르 위그 (Pierre Huyghe): 전시장 안에 벌 떼를 풀거나 살아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작가. 인간 중심의 예술을 벗어났다는 점에서 맥락을 같이 한다.

The Language of The Enemy는 AI의 언어다. 우리의 일자리를 뺏는 AI는 적이지만 함께 살아 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글쓴이: General Oh

Hope to be a Sleeper in the Gr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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