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squiat’s Girl Friends

28년의 짧은 삶을 살다 간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 1960~88)의 연인들을 정리해 보았다.

Alexis Adler (당시 22세)

바스키아(당시 18세)는 길거리에서 시비가 붙은 아들러를 구해 주게 되면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1979~80년까지 뉴욕 맨허튼의 이스트빌리지(527 East 12th Street)에서 동거를 하였었다. 당시 뉴욕은 쇠퇴하고 있었고 이스트빌리지 건물도 낡고 방치되었으나 이 지역의 음악 등 예술계는 오히려 번성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낮은 임대료-가난한 예술인에게는 고마운-덕이었을 것 같다.

두사람이 헤어진 후에도 아들러는 그 집에서 계속 머물렀으며 바스키아의 흔적을 35년간 유지 보관하고 있다가 2014년 크리스티 경매에 내놓게 된다.(https://nypost.com/2014/02/25/once-basquiats-lover-shes-now-selling-the-works-he-left-behind)

Suzanne Mallouk(1960~)

말록은 이스트빌리지의 한 바(Night Birds)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다가 바스키아를 만나게 된다. 말록은 바스키아의 가장 중요한 연인이자 뮤즈로 꼽히는 인물로 이후 바스키아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1981)하게 되며 이 때가 바스키아의 초기 걸작들이 많이 만들어진 시기로 바스키아도 그녀를 무척 아껴 “비너스(Venus)”라고 불렀으며 작품에 종종 표현되기도 한다.

바스키아가 예술품 딜러인 Annina Nosei(1933~)로 부터 후원을 받을 때까지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였으며 헤어진 후(1983) 사망할 때까지 관계를 유지하였다.

Madonna(1958~)

신예 예술가로 뜨기 시작한 바스키아, 데뷔 싱글곡 “Everbody”(Released 1982.10.06, 들어보니 노래가 너무 촌스럽다. 명곡은 아니다.)를 이제 막 발표한, 뜨기 직전의 신출인 마돈나는 1982년말 맨허튼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눈이 맞았고 이번에는 바스키아의 작업실(돈을 좀 벌었나 보다.)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하지만 바스키아의 약물중독, 편집증적 성격으로 둘의 관계는 6개월만에 파탄이 났고 동거 당시 바스키아는 말록과도 연인 사이였기에 이후 바스키아는 말록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려 하였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어느날 말록이 클럽에서 눈에 띈 마돈나의 머리채를 잡는 등 다툼을 벌인 일화는 유명하다.

A Panel of Experts (1982)

작품 좌측 상단에 당시의 연인이었던 Mallouk(‘Venus’)과 Madonna가 같이 표현되어 있다.

마돈나 이후 앤디 워홀(Andy Warhol, 1928~1987)의 잡지 <Interview>의 에디터였던 Paige Powell (1983~1985), 뉴욕의 유명 클럽 “Area”의 창업자의 여동생 Jennifer Goode (1985~1986) 등과 사귀었으며 Jennifer Goode의 경우 청혼까지 하는 등 진지한 관계를 가졌지만 결국 바스키아의 약물 중독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게 된다.

1988년 8월 12일, 바스키아가 약물 과다복용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것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그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Kelle Inman이다.

바스키아의 약물 중독 원인을 쓴 글들을 보면 마치 갑작스러운 유명세 부담, 예술가로서 창작의 고통 등 미화된 내용들이 많은데 첫번째 연인인 아들러의 얘기를 찾아보면 이미 동거 당시(1979, 바스키아 나이 18세) 때부터 헤로인 등 약물에 익숙해져 있었던 상태였다.

끝.

글쓴이: General Oh

Hope to be a Sleeper in the Gr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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