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aken 2019.10.14 in The Mauritshuis, Hague
암스테르담에서 기차로 한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면 헤이그에 도착하는데 이곳의 마우리츠하위스미술관에서 Vermeer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44x39cm)를 만날 수 있다.

The Mauritshuis in Hague
17세기는 네덜란드가 무역, 과학, 군사, 예술에서 황금기의 정점인 시점으로 네덜란드의 대표작들은 대부분 이 때 만들어졌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며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도 이중 하나에 포함된다.
이 작품을 그린 Johannes Vermeer는 1632년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태어났고 일생을 이 곳을 거의 떠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스승이 누구였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동시대 작가인 카렐 파브리티우스(Carel Fabritius)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것으로 학계는 추측하고 있고 Vermeer의 현존하는 작품은 30여 점(현재까지 파악된 기준으로는 37개작)에 불과할 정도로 과작의 예술가였다.
트로니(Tronie), 초상화가 아닌 인물화의 미학
이 작품은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Tronie 라는 장르의 일물화로 특정 인물의 정체성을 기록한 그림이 초상화라면 Tronie는 이국적인 복장이나 특이한 표정, 인물의 유형을 탐구하기 위해 그려진 ‘가상의 인물화‘다. Tronie의 또 다른 대표화가로는 Fran Hals (1580~1660)가 있다.
Vermeer의 작품들은 대부분 특정 찰라의 순간을‘인위적으로 설정‘한 둔 뒤 그 장면을 그림으로 옮기는 형식을 이용하였는데 이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Tracy Chevalier가 1999년 출간한 동명의 소설(국내에도 출간됨)을 읽어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Vermeer는 이 작품에서 빛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어두운 배경은 소녀의 얼굴과 푸른 터번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는데 이는 당시 북유럽 르네상스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빛의 질감을 포착하는 Vermeer만의 독창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서양 미술史에서 이 작품이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불리는 이유는 그만큼 신비로운 분위기와 완벽한 구도를 갖췄기 때문이다.
17세기 중반의 시대상과 역사적 조망
- 뉴욕의 영국 점령(1664): 원래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뉴엄스테르담이 영국에게 빼았겼고 이 때 요크 공(Duke of York)의 이름을 때 NewYork로 바뀌게 된다.
- 제2차 영란전쟁(1665~1667): 해상 패권을 두고 네덜란드와 영국이 격돌했다.(네덜란드가 승리하였다.)
- 런던 대역병(Great Plague of London, 1665): 영국에 창궐한 마지막 흑사병으로 런던 인구의 25%인 10만명이 사망하였다.(이러니 네덜란드에게 졌지.)
작품 감상 포인트
진주와 빛의 변주
사실 Vermeer는 진주의 윤곽선을 정교하게 그리지 않았다. 단 몇 번의 터치와 하이라이트 표현만으로 거대한 진주의 질감을 구현했다. 이는 인간의 시각적 착시를 이용한 고도의 테크닉이다.
푸른 터번과 Lapis Lazuli
소녀가 쓴 푸른색 터번에는 당시 금보다 비쌌던 천연 울트라마린(Natural Ultramarine)** 안료가 대량으로 사용됐다. 이는 청금석(Lapis Lazuli)을 갈아 만든 것으로 Vermeer가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재료에 타협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 청금석(Lapis Lazuli)으로 만든 안료는 지금도 상당히 고가(1Kg당 1천~1.5천만원, 합성안료는 수천원)이며 가격이 높은 만큼 당시에는 ‘고귀한’ 성모 마리아를 묘사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
열린 입술의 찰나
소녀는 관람객을 응시하며 입을 살짝 벌리고 있다. 이는 마치 무언가 말을 걸려는 순간을 포착한 듯한 생동감을 준다. 입술 위의 작은 점처럼 찍힌 빛의 묘사는 수분감을 더해 현실감을 극대화한다.(스칼렛 요한슨 입술도…)

동명 소설을 2003년 영화로도 만들었다.
1994년 작품의 보수 작업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는 칠흑 같은 검은색 배경이 원래는 짙은 녹색 커튼이었다는 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안료가 변색 되어 지금의 미니멀한 배경이 완성된 것이다. 의도치 않은 시간의 흐름이 오히려 작품의 집중도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함께 감상하면 좋은 추천 리스트
Vermeer의 정적인 미학에 매료되었다면 다음 작품들을 함께 살펴보는 것을 권장한다.
- 카렐 파브리티우스, ‘황금방울새’: 베르메르에게 영향을 준 작가의 작품으로, 단순한 구도 속의 깊이감을 느낄 수 있다.
- 렘브란트 반 레인, ‘자화상’ 시리즈: 동시대 네덜란드 황금기를 이끌었던 거장의 빛과 어둠의 대비를 비교해 보기에 적합하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17세기 네덜란드의 경제적 풍요와 예술적 섬세함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4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소녀의 시선이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인간 본연의 순수함과 찰나의 미학을 완벽하게 포착했기 때문이다. 직접 미술관에서 대면했을 때 느껴지는 아담한 크기와 대비되는 거대한 존재감은 이 작품만이 가진 독보적인 가치다.
작품을 보러 헤이그에 갈 일이 있다면 간 김에 이준열사기념관과 이준, 이상설, 이위종 특사가 대한제국의 억울함을 알리려 하였으나 끝내 입장하지 못했던 1907년 제2차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Binnenhof도 미술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