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mini에게 물어 보았다. 왜 여자들은 예술가를 좋아 하는지.
Gemini가 내놓은 이유 中 하나가 나에게는 ‘신박’하게 느껴져 요약해 보면, 여성들은 본능적으로 예술가의 ‘창의성은 지적 유연성의 증거‘이며 틀에 박히지 않은 사고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호감을 갖게 된다고 한다. 단순히 ‘멋있어서’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 한다.(진짜?)
다만, 요즘 시대에 피카소가 아닌 이상 예술가로서의 삶은 녹녹치 않기에 예술가의 ‘영혼’은 사랑할 수 있지만, 예술가의 ‘통장 잔고’까지 사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피키소(Pablo Picasso, 1881~1973)를 거쳐간 일곱 연인에 대하여 정리해 보았다.
Fernande Olivier (1881~1966)
피카소가 명성을 얻기 전인 1904년부터 1912년 사이의 연인으로 폭력적인 남편으로부터 도망쳐 돈을 벌기 위해 몽마르뜨에서 예술가들을 상대로 모델 일을 하다가 만났다.

피카소의 화풍은 몇가지 시대로 나뉘는데 페르난데를 만나면서 청색시대(Blue Period, 1901~1904)를 끝내고 밝은 톤의 장미시대(Rose Period, 1904~1906)로 넘어간 것으로 봐서 피카소도 행복한 시절이었음을 추측해 볼 수 있다.

2022.09.22, Kunsthaus Zürich
피카소는 장미시대(1904~)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상업적 주목을 받기 시작하였고 1907년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입체주의(Cubism)의 시작-로 현대미술의 대표주자로 떠오르게 되는데, 명성이 높아지면 남자는 자신과 함께 해온 과거의 여인은 지겨워지게 마련이라 피카소 역시 1911년 프랑스 남부 세레(Céret)에서 에바 구엘(Eva Gouel)을 만나면서 1912년 페르난데와는 헤어지게 된다.

출처 : https://www.pablopicasso.org/
이 여인들 中 한명이 페르난데이다. 뉴욕 MoMA ( https://www.moma.org)에 가면 볼 수 있다.
Eva Gouel (1885~1915)
무용수였던 에바(본명은 Marcelle Humbert)와 페르난데는 친구 사이였기에 피카소도 에바와 사귀던 초반(아직 페르난데는 이 사실을 모르는-양다리)에는 들키지 않으려고 작품 하단에 ‘Ma Jolie‘(1912, My Pretty)라는 문구로 에바에 대한 사랑을 우회적으로 표현하였다. 에바는 결핵으로 30세에 갑자기 사망한다.

에바를 만날 당시의 작품으로 하단에 ‘Ma Jolie‘ 문구가 보인다. 뉴욕 MoMA에 가면 볼 수 있다.

Ma Jolie, 1912 (출처 : https://www.pablopicasso.org/)
Olga Khokhlova (1891~1955)
피카소의 첫 공식적인 부인이다.
올가는 러시아 출신 발레리나로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는데 1917년 피카소가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로 참여한 발레 공연 ‘Parade’로 인연을 맺게 된다.


Oil on Canvas, 130 x 88.8 cm (출처 : https://www.pablopicasso.org/)
그림은 항상 실물보다는 아름답게 표현된다.
시어머니의 반대(부모님 말씀 들었어야지.)에도 1918년 7월 12일 파리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아들(Paul Joseph Picasso, 1922~)도 낳게 되지만 이때부터 둘 간의 관계는 삐걱거리게 되었고 이후 피카소는 사창가를 들락거리다 결국 17세 소녀-마리 테레즈 발터 (Marie-Thérèse Walter)와 불륜(1927~)을 시작하게 된다. 이 때 피카소 나이는 45세였다.
Marie-Thérèse Walter (1909~1977)
우연히 길거리에서 피카소의 눈에 띈 테레즈는 1927년부터 피카소의 딸 마야(Maya Widmaier-Picasso, ~2022)를 임신한 1935년까지 아내 올가 몰래 불륜 관계를 유지하였다.
테레즈는 피카소의 ‘Golden Muse’로 불릴 정도로 많은 작품에 영감을 주었으며 걸작들도 많이 탄생하게 되는데 특히 1932년은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불릴 정도로 창작 욕구가 폭발하던 때로 이 당시 테레즈를 모델로 관능적이고 초현실주의에 가까운 작품들을 많이 쏳아냈고 미술史적 가치도 높아 경매가도 매우 높게 거래되고 었다.
이 시기 대표작 세개 모두 1932년에 그려졌으며 2010년 당시 환율로 1,400억원에 거래된 ‘Nude, Green Leaves and Bust'(162 x 130cm)이 셋 중 가장 싼 작품이다.



(출처 : https://www.pablopicasso.org/)
** ‘Le Rêve’는 현재 Newyork Mets구단주인 스티븐 코헨(Steven A. Cohen, 1956~)이 소유하고 있다.
둘간의 – 피카소와 테레즈 – 사이를 알게 된 올가는 이후 죽을 때(~1955)까지 별거로 지냈다.(피카소는 이혼을 원했지만 올가의 ‘절대 반대’로…)
테레즈가 딸 마야를 출산하기 전후 이 난봉꾼은 이미 다른 두 여자( Alice Paalen and Valentine Hugo)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고 마야가 태어난 이듬해인 1936년부터는 도라 마르 (Dora Maar)를 만나기 시작한다.
to Be continued in Part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