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이후 국내에서 열린 알폰스 무하展은 무려 일곱 차례(2025년에는 세번)나 질릴? 정도로 자주 전시회가 열리는 것 같기는 하지만(이번 포스트 끝자락에 이유를 적어 보았다.) 더 현대에서 준비한 이번 전시는 한-체코 수교 35주년을 기념하여 ‘체코의 국보 11점‘을 포함, 143점이 전시된 특별展이라하니 기존 전시와는 쬐~금은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종료가 얼마 남지 않아 토요일(2026.02.21) 아침 일찍 전시를 다녀왔다.
여의도역 3번 출구에서 지하 아케이드를 쭉~ 걸어가다 보면(꽤 길다. 700미터) 더 현대 지하 입구에 다다를 수 있으며 나름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많은 사람이 백화점 개장(10:30)을 기다리고 있었다.

Alphonse Mucha ?
1860년 체코 동남쪽 이반치체(Ivančice)에서 태어났다.
당시 이곳은 합스부르크왕가**가 통치하던 오스트리아 영토였으나 독일의 1차 세계대전(1914~1918) 패전으로 독일과 손 잡은 오스트리아-헝가리도 함께 패전국이 되면서 오스트리아에 복속되어 있던 슬라브계 민족들이 대거 독립을 하게 되었고 이 때 이반치체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무하도 체코 출신 미술가로 불리며 戰後 체코로 돌아가 슬라브계 민족**의 자긍심을 높이기 위한 예술 활동에 남은 생을 매진한다.

2022년 합스부르크 왕가 콜렉션展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렸었지…
**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는 국회 의결을 통해 무력 충돌 없이 평화롭게 체코와 슬로바키아로 갈라 서게 된다. 이유는 같은 슬라브계 민족이었지만 과거 지배를 받던 국가(오스트리아-헝가리)가 다름으로 인한 문화적 이질감, 기반 산업 차이로 인한 경제력 불균형 등이 지역간 갈등을 유발하였기 때문이다.
무하는 어릴 때부터 미술적 재능이 있어 프라하 아카데미(지금의 체코미술대학, https://avu.cz/)에 지원(1878)하였지만 낙방 후 빈(Vienna)에서 무대세트 제작 회사의 견습생으로 일하다가 화재로 일자리를 잃고 미쿨로프(Mikulov)로 이주하는데 이곳에서 ‘귀인’ 벨라시백작(Eduard Khuen-Belasi, 1847-1896)을 만나게 되어 뮌헨(Akademie der Bildenden Künste München, https://www.adbk.de/en/)과 파리(Académie Julian, 1968 폐교)에서의 수학을 후원 받으면서 성공의 기회를 다지게 된다.

2026.02.21, The Hyundai, Seoul
Sarah Bernhardt(1844~1923)
19세기 ‘월드스타'(당시에는 유럽과 미국이 세상의 전부)라 불릴 수 있는 최초의 인물로 베르나르를 꼽는데 이 여배우가 자신이 인수한 극장(Théâtre de la Renaissance, 지금도 영업 中)에 희곡 ‘Gismonda‘을 초연(1984.10.31)하게 된다.


이후 이 공연의 인기가 너무 좋아 재공연을 위해(1985.01.04) 급하게 새로운 포스터를 의뢰하고자 인쇄소(Imprimerie Lemercier)에 연락을 하였는데 때가 마침 크리스마스 이브로 무하만이 휴가를 가지 않고 교정 작업을 하고 있었기에 베르나르의 포스터를 그리게 되고 무하는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혁신적 구도와 형태, 디자인의 포스터를 내놓음으로써( 1985.01.01~) 무하의 전성시대가 시작된다.
전시장을 들어가면 정면에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작품 – ‘Gismonda’ 포스터다.

2026.02.21, The Hyundai, Seoul
이후 무하는 베르나르와의 6년 전속계약을 통해 포스터 뿐만 아니라 의상, 장신구, 헤어스타일, 무대장치 등 다양한 디자인 작업을 의뢰받게 되며 무하는 이를 계기로 ‘Art Nouveau’**의 정수를 구현한, 서구권에서 최고의 예술가 中 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된다.
** Art Nouveau에 대해서는 추후에 다시 한번 포스팅 해 보겠다.

2026.02.21, The Hyundai, Seoul
당시 파리의 광고판은 포스터-당시로서는 최고의 미디어-의 경쟁이였고 이로 인해 포스터의 예술적 완성도도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였는데 툴루즈 로트렉(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류의 광고 포스터에 익숙한 파리 시민들에게 무하 스타일은 혁신적이였다고 볼 수 있다.(오죽하면 Gismonda 포스터를 몰래 뜯어 가거나 웃돈 주고 거래를 했겠는가.)


< 출처 : https://en.wikipedia.org/ >
The Slav Epic
슬라브계인 무하는 프랑스-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로서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장에 체코를 식민 지배하는 오스트리아의 부스를 꾸미는 등 개인적 영광과 이들에게 식민 지배를 받는 슬라브민족의 설움으로 내적 갈등을 심하게 앓았었고(마치 우리의 손기정선수가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을 뛴 것과 같은) 이를 계기로 그는 외세의 지배에 끊임 없이 고통받는 슬라브민족의 현실을 예술로 표현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무하는 슬라브민족의 신화와 역사를 주제로 20점의 대형캔버스(최대 6 x 8m)에 그렸는데(1910~1928) 이와 연계된 국보 유화 3점**(실제 슬라브 서사시 연작은 아닌)이 이번 전시에 포함되었다.
2026년 현재 ‘슬라브 서사시’ 원작들은 Moravský Krumlov Castle 에 가면 볼 수 있다.
** Slavia, 1920 / Spring Awakens the Earth, 1933 / Madonna of the Lilies, 1905


2026.02.21, The Hyundai, Seoul
한편, 무하는 생전에는 상업적 일러스트레이터로는 인정을 받았지만 순수 예술가로는 인정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가 그의 작품들이 당시 예술의 개념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같은 석판화가인 툴루즈 로트렉이나 장식화가인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는 예술가로 인정하는데 무하는 안된다?
무하는 당시 자기 나라 없이 식민의 삶을 살고 있었던 슬라브계 이민자였기에 거만한 제국주의자들에게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인물이였을 것이다.

2026.02.21, The Hyundai, Seoul
끝.
PS : 무하의 작품은 Mucha Foundation (https://www.muchafoundation.org/)을 통해 체계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보기 드문 작가라 큐레이터 입장에서는 작품 협의가 다른 예술가들에 비해 쉽고 작품도 대부분 석판 인쇄물이라 이동 보관의 부담이 적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쉽게 돈 벌 수 있는…